사람들이 잘 모르는 쇼군을 빼앗긴 도쿠가와 가문 마지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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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lished 2022-07-08

All Comments (21)
  • @NewZealandArt
    도쿠가와가문의 내려놓은 마음을 잘 알았습니다. 세심하게 설명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peterchoi6598
    시대의 변화를 보지 못하고 권력을 놓지 못해 고집부리다 아예 멸문당하는 경우도 많은데 도쿠가와 가문은 차근차근 내려놓으며 가문을 보존했군요. 이에야스는 가신들에게 녹봉 짜게 주기로 천하에 유명했지만 이해득실 안따지고 충성만 바치는 가신이 500이나 되었으니 정말 보물이라 자랑할 만하네요. 그렇다고 가신들이 다 천사라 그런건 아니고 사소한 일로도 주군에 의해 죽음을 당하거나 멸문을 당하는 당시 분위기에서 이에야스는 거의 공무원 철밥통처럼 안정된 환경을 만들고 어지간해선 가신을 벌하지 않았기 때문에 박봉에도 잘 따랐던 것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 @user-ce4wz6gs8p
    우짜든간에 요시노부의 결단으로 가문의 명맥을 현대에까지 유지하고 있는 것이네........ 살아남는 것이 강자이지.....
  • @tak1635
    도쿠가와는 오랫시간 해먹었고 아직도 가문이 건재한데 뭐... 짧은 시간 반짝하고 사라진 가문들도 얼마나 많은데...
  • @ztzeros
    도쿠가와의 처세술은 배울 점이 많음 몰락하는 데에도 방법이 있다니
  • @danjjakchinguTV
    '도쿠가와 가문' 영상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 @mango______8188
    저때로 인해 조슈번 사쓰마번 출신들이 지금까지 일본의 정권을 잡고 있는건가? 아베 고이즈미 등등이 다 이쪽 번 출신. 게다가 대다수 조선총독부 와 조선식민지 일제군장성들이 조슈출신들이 많았... 대체로 요시다쇼인의 영향을 많이 받은 자들. 그중 이토히로부미도 있고
  • @chrisryu1975
    비참한 최후라는 제목과 달리 마지막 쇼군의 여생이 그리 불행하지는 않았군요. 물욕이나 권력욕에 휘둘리지만 않으면 사람의 삶이 그리 불행해질 일은 없다는 교훈을 전하는듯 합니다.
  • @lovelove-bc8ri
    예전에 아주 어릴때 역사를 잘 모를때 단편적인 지식으로 우리나라가 일본에 강제병합을 당한 일이 단순히 일본이 우리보다 개화가 더 빨랐고 서양의 신진문물을 더 개방적으로 받아들이면서 군사력 경제력 등에서 밀렸기때문이라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사실 일본이 조선보다 개항이 그렇게 빠른 것도 아니었음. 고작 10여년... 그 사이에 일본은 구식 사무라이 군대에서 당시 최첨단 신식군대로 재편하고 증기기반 함대를 구성하고 서양 각국에서 유학생과 사찰단을 보내 적극적으로 서양의 선진문물을 습득하면서 부국강병을 꽤함. 이런거 보면 나라의 의사결정권자들의 마인드와 행동력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느끼게 됨. 그때도 시대의 흐름을 못 따라가고 사대주의에 빠져 객관적인 국제정세를 파악하지 못한 고루하고 낡아빠진 기득권의 마인드가 패망의 원인이었지. 지금은 그렇지 않은지 타산지석 삼아야 진정한 역사의 교훈이라고 생각함.
  • 요즘 리메이크 미드 쇼균에 빠져서 살다보니 결국 이영상까지 보게 됬어요 ㅋㅋㅋㅋ. 재밋네요~
  • 전혀 비참하지 않고 오히려 훌륭한 결정으로 내전으로 열강에 먹힐수도 있는 나라를 구했고, 이후도 훌륭한 사람이네
  • @user-yi5eh6mk8z
    프랑스 전권대사 포슈가 전면적인 경제 군사지원을 약속하며 정부군과 동서로 대치후 결전을 요구했고 하타모토들도 그렇게 하자고 했지만 요시노부는 끝내 에도성문을 무혈로 열고 항복하며 전쟁을 끝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막부를 위해 끝까지 싸운 아이즈번은 나몰라라 했고 이후 아이즈번은 정부군에 의해 본보기 및 분풀이로 철저하게 파괴되고 그 지방 사람들은 역도취급을 받으며 불평등한 대접을 받았습니다.(정작 아이즈번을 구하기 위해 동북지방 10여개 번들이 맺은 오우에츠 열번 동맹이 마지막까지 정부군과 싸워줬죠) 처음에 요시노부는 정부군에겐 겁쟁이 정부군이 무서워 투항한 얼간이로 옛 가신들에겐 책임회피자 정작 가신들은 나몰라라 하고 자기만 착한척 친절한 척 하는 무능한 위선자 로 불렸습니다. (한 예로 막부말 로중의 한사람이었던 이타쿠라는 그의 밑에서 일했던 것이 내 인생 최대의 수치라고 하였습니다.) 심지어 후대인 다이쇼 시대 역사 교과서에도 그는 무능한 겁쟁이로 적혀 있었죠. 비록 그를 옹호하는 거의 유일한 인물인 가신출신 시부사와가 열심히 변호하긴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시부사와가 거물인 고위 경제관료였던지라 그가 주장한 요시노부공은 자신이 수모를 당할걸 알면서도 대의와 평화를 위해 성문을 열었다가 점차 인정받기 시작하여 오늘날 일본역사 교과서엔 요시노부의 결단이 일본을 구했다 라고 적혀있죠
  • @user-dz1bv2yo8p
    근데 왜 전국시대 동영상이 대부분 비공개 되는데 이유가 궁금 함니다 답변 부탁 드립니다
  • @user-bj6om1wj3i
    진인사 대천명 하늘의 문이 열리지 않으면 아무것도 이뤄지지 않는다. 예정된 운명을 실현하는 것일뿐 자신의 범주를 아무도 모른다
  • @brokenkenny1899
    히데요시 아들은 비참하게 도쿠가와 이에야스에게 죽었는데 그에 비하면 너무 행복한 결말이군
  • @youslash1
    다른 유명 가문들의 경우도 어떻게 됐나 알수 있을까요?
  • @hogulife
    역사는 정말 흥미롭습니다. 당시의 평가가 박하다고 한들 후대는 다른 의견들이 많으니까요. 실제로 요시노부를 보면 그런 생각을 합니다. 우리 같은 평범한 사람들이야 거대 권력을 잡아보지 못해봤지만 그걸 내려놓는 건 상당히 힘들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굳이 일본 뿐만 아니라 전 세계, 우리나라만 봐도 권력을 잡는 사람들이 힘에 취해 국민들이야 어찌되든 어처구니 행동을 하지 않습니까. 자신이 가진 것을 내려놓을 타이밍을 정확히 안다는 것..... 그게 권력이 아닐지라도 저에겐 상당히 어려운 일인데요.
  • @jerrya8621
    몇 년전에 도쿄의 한 식당에서 옆 테이블에 있던 사람들이 서로 소개를하는데 (외국인들과 일본인들의 회식같았습니다), 그 중 한 여성이 자신을 도쿠가와라고 소개해면서 역사에 나오는 그 도쿠가와의 후손이라고 말하던 것이 기억나네요.
  • @youngson6421
    소프트랜딩에 성공한 본받을만한 가문이었네요 ㅎㅎㅎ